땅끝에서 돌아서다
이숙경
이곳에서
돌아서자
그 끝을 미루어 두자
너무나
보고 싶지만
이정표 등지고 오길
잘했다
시작의 끝은
더 살다가 보기로 하자
길치
이숙경
밝은 데서 볼 줄 아는
눈빛은 가졌으나
어둔 데서는 한 치 앞도
못 보는 나의 눈빛
먼 데를
가던 눈빛은
이따금 길을 잃었다
중앙 이발소
이숙경
고즈넉이 내려와 창을 지키는 유월 햇살 늙은 이발사
는 문득 앙상한 손을 올려 거울 속 수심을 닦다 물끄러미
쳐다본다
동심원을 그리는 수건이 멈춘 자리 지난한 시간 꿰뚫
는 날이 선 눈빛에 둥글게 걸터앉았던 단골이 그려진다
머리를 내맡기면 단숨에 정수리까지 그들의 한복판을
치고 올라 매만진 손 가위에 잘리는 허공, 이제는 수염
같다
<<까막딱따구리>> 고요아침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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