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이숙경 시인의 시집 <<까막딱따구리>>

꿍이와 엄지검지 2020. 3. 10. 21:37





땅끝에서 돌아서다


이숙경


이곳에서

돌아서자


그 끝을 미루어 두자


너무나

보고 싶지만


이정표 등지고 오길


잘했다

시작의 끝은


더 살다가 보기로 하자




길치


이숙경


밝은 데서 볼 줄 아는

눈빛은 가졌으나


어둔 데서는 한 치 앞도

못 보는 나의 눈빛


먼 데를

가던 눈빛은

이따금 길을 잃었다




  중앙 이발소


  이숙경


  고즈넉이 내려와 창을 지키는 유월 햇살 늙은 이발사

는 문득 앙상한 손을 올려 거울 속 수심을 닦다 물끄러미

쳐다본다


  동심원을 그리는 수건이 멈춘 자리 지난한 시간 꿰뚫

는 날이 선 눈빛에 둥글게 걸터앉았던 단골이 그려진다


  머리를 내맡기면 단숨에 정수리까지 그들의 한복판을

치고 올라 매만진 손 가위에 잘리는 허공, 이제는 수염

같다




<<까막딱따구리>>  고요아침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