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연시조

김문억 선생님이 읽어주신 김영주의 <젖>

꿍이와 엄지검지 2021. 1. 27. 16:23

 

김영주

 

대형마트 냉장코너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우유와 요구르트 치즈와 크림 버터

저 많은 유제품들은 어느 몸에서 나왔을까

 

처음엔 몰랐었다 알면서도 아니, 몰랐다

새끼 가진 어미만이 젖을 낼수 있다는 것을

죄 없이 스러져가는 송아지 보고 알았다

 

젖 물려본 어미는 안다 뭉클한 복받침을

찌르르 젖이 돌 때 눈물도 펑 도는 것을

어미소 큰 눈망울에 눈물 그렁 고였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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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배달된 시조시학 여름호에 올라있는 김영주의 작품이다

젖 이라고 하는 제목부터 조금은 파격적이다

그래서 좋다

내가 이 작품을 읽고 감동하여 눈여겨 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소설이 선명하면서 시종일관 사랑이라고 하는 주제가 따듯한 작품이다

시 독자들이 시조를 외면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구체적이지 못하고 모호한 내용에 있다

오히려 고시조에서는 소재나 주제가 선명했지만

어찌된 셈인지 현대시조에 와서 뼈 없이 물렁한 작품이 너무 많았다

 

이 작품은 어려운 詩語나 수사가 없다

난 무엇보다 겉치레 없는 그 점이 맘에 쏙 든다

읽다가 사전 찾아 볼 일도 없고 골치썩을 일도 없다

잘 정돈된 말이 詩 라는 말이 있다

어느 곳을 읽어 봐도 그냥 예삿말이다

그러면서도 그 말마디가 있어야 할 곳에 있고 놓아야 할 곳에 놓아지므로 해서

앞글과 뒷글의 엮음이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앞장과 뒷장의 조응관계가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선명한 이미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렇고 보면 억지스러운 곳이 없으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고

전달하고 싶은 뜻은 충분히 전달하면서 감동을 준다


신선하고 깊은 생물 매운탕 맛이다

 

호랑이나 사자 같이 생육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면

두 발로 서서 살아가는 사람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고기에 있는 영양분을 채소나 곡식에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시뻘건 고기를 보면서

갈비탕 보신탕 내장탕 같은 탕탕탕을 읽을 때 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생각 해 보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은 사람들의 그런 잔인성마저 항변하고 있다

송아지 울음 소리만 남겨 놓고 사람의 먹거리로 죽어 가고 구제역으로 죽어 가고 있다.

 

 

작품을 읽다가 보니 자칫 놓치기 쉬운 곳이 있다

 

<냉장코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이렇게 부드럽게 시작해도 무관할 것을 구태여

<대형마트 냉장코너에서....>라고 했다

첫 수 첫 장에서부터 4.5 로 출발해야 했던 까닭이 있다

그냥 냉동코너가 아니라 대형마트를 도입 하므로 해서 그 수량을 더욱 배가 시키고 있다

전국 각지에 산재 해 있는 많은 유통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그 많은 유제품을

대형마트 란 단어로 환기 시키고 있다.

그렇더라도 첫 수 초장이 시조의 율격에서 벗어나지도 않을 바에야

시에서 더욱 소중한 이미지 선택을 중히 여겼던 것이다

시조는 다만 3 장 6 구라고 하는 정형시 일 뿐인데도 그 동안 지나칠 만큼

가락이란 것을 앞세워 교육 시켜왔다.

음악적 리듬은 어느 시 분야에서나 기본으로 되어 있는 생명줄이다

마치 시조에서만 있는 것처럼 전통을 내 세우면서 유세를 떨어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수갑을 채우는 글자 수에 억매이면서 발전을 막아왔다. 그건 그렇고

별 의미가 없는 듯하면서도 <한참을 서 있었다> 라는 그 마음의 흐름 속에서

작중의 긴긴 이야기가 모아지고 있다.

그것은 결국 중장으로 너머 가는데

<우유와 요구르트 치즈와 크림 버터>

히야! 이 중장도 참으로 멋스럽다

시조에서는 어느 부분이나 앞에서는 짧게 받쳐주고 뒷부분을 길게 받쳐 주어야 율이 좋다

그러면서 앞장과 뒷장의 대응 관계를 잘 맞춰 주어야 시조 한 수로서의 전체 가락이 잘 맞아 떨어지게 되어 있다.

 

<우유와 요구르트> 3.4 가 그렇고

<치즈와 크림 버터>3.4가 그렇다

 

눈여겨 볼 것은 우유와 요구르트 액체 제품을 앞에 놓고

치즈와 크림 버터를 뒤에 놓았다는 세밀함도 놓칠 수 없는 감상법이다

 

결국은

 

대형마트 냉장코너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4.5.3.4

우유와 요구르트 치즈와 크림 버터-3.4.3.4

저 많은 유제품들은 어느 몸에서 나왔을까-3.5.5.4

 

첫 수의 도식을 보자면

초장을 길게 빼 준 대신에 중장에 와서 기본 글자 수로 받쳐 주고

종장에 와서는 제 자리로 돌아오는데 마지막 句역시 5.4 로 정리 되면서 4.3을 대신하고 있다.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매우 자연스러운 중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 작가가의 시조쓰기 역량을 가늠하게 된다.

 

 

둘 재 수로 가 보면 더욱 佳句다

 

<처음엔 몰랐었다 알면서도 아니, 몰랐다>

이 부분은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의미심장한 구절이다

처음엔 몰랐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알면서도 아니, 하고 쉼표를 찍고 있다

작가의 문장을 따라 가면서 읽다가 보니 쉬어서 읽으라고 하니 한 호흡 쉬면서 잠시 생각에 잠길 수박에.

처음엔 몰랐는데

근데

알면서도 아니,

생각 을 해 보니 몰랐다는 것은 애를 낳기 전의 어린 시절엔 무심코 보아 왔다는 말이다.

철 모자라던 때를 잠시 회상하게 한다.

내가 새끼를 두고 젖을 생산 하면서 자식을 기르므로 인생 역정에서 얻어진 깨우침의 고백이다.

알았다 몰랐다를 반복 하는 몇 글자를 갖고 심중의 긴긴 이야기를 다 응축 시켜서 외치고 있다.

걸핏하면 자식을 버리고 부모의 정을 끊는 세태에 대한 일침이다.

이 보다 더 큰 훈시는 없다.

 

김영주는 시조 기술자다.

우리 말을 잘 노 저어 가는 말의 조타수다

화장 끼 없는 말의 신선도와 거짓 없는 진실이 따뜻하다

 

작년부터 이 작가의 낮선 이름이 내 눈에 들어오고 있다

 

좋은 작품을 배달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영주 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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