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마라도에서 / 손종호

꿍이와 엄지검지 2010. 4. 19. 08:58

마라도에서

 

종호

 

풍랑은 끝이 없다.

부둥켜안아도

쓰러져 울어도

뱃길은 오히려 바람에 끌려

먼 바다로 사라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기가 끝이라고 말한다.

공화국의 비리도

분단의 상채기도

여기까지라고 말한다.

 

거칠게 무너져 오는

파도의 눈부신 붕괴를 보며

빚진 자들이 소리친다.

…갚아도(加波島) 좋고

…말아도(馬羅島) 좋고

이승의 녹슨 지느러미들이

발 아래 출렁이며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다.

그러나… 여긴 끝이 아니다.

잿빛 구름이

건초 속의 벌레라도 뒤지듯

낮게 드리우고

조랑말 몇 마리

역사의 뒤뜰 같은 고요 속에

풀을 뜯을지라도

여긴 끝이 아니다.

 

우러러 내륙을 보면

차라리 바람이 시작되는

뜨거운 핏줄의 시초

밀려온 울음들조차

더는 나아갈 곳 없는 절망으로 힘을 얻어

등대 하나 밝혀 선 땅

부둥켜안아도

쓰러져 울어도

오늘도

풍랑은 끝이 없다.

 

- 손종호, <마라도에서> 한라의 저녁 마라도의 새벽 / 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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