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서
손종호
풍랑은 끝이 없다.
부둥켜안아도
쓰러져 울어도
뱃길은 오히려 바람에 끌려
먼 바다로 사라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기가 끝이라고 말한다.
공화국의 비리도
분단의 상채기도
여기까지라고 말한다.
거칠게 무너져 오는
파도의 눈부신 붕괴를 보며
빚진 자들이 소리친다.
…갚아도(加波島) 좋고
…말아도(馬羅島) 좋고
이승의 녹슨 지느러미들이
발 아래 출렁이며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다.
그러나… 여긴 끝이 아니다.
잿빛 구름이
건초 속의 벌레라도 뒤지듯
낮게 드리우고
조랑말 몇 마리
역사의 뒤뜰 같은 고요 속에
풀을 뜯을지라도
여긴 끝이 아니다.
우러러 내륙을 보면
차라리 바람이 시작되는
뜨거운 핏줄의 시초
밀려온 울음들조차
더는 나아갈 곳 없는 절망으로 힘을 얻어
등대 하나 밝혀 선 땅
부둥켜안아도
쓰러져 울어도
오늘도
풍랑은 끝이 없다.
- 손종호, <마라도에서> 한라의 저녁 마라도의 새벽 / 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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