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寂)
- 그때 난 차 안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영주
잠자리 두 마리가 장대 같은 빗속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비를 잊고 있었다
순간이
전(全) 생인 것처럼
소지(燒紙)올리듯
그렇게
<시작노트>
장대같이 쏟아지던 빗줄기 속에서 나는 무성영화 한 컷을 본다.
빗줄기는 오래된 영화필름의 스크래치처럼 차창을 긋고
까마득한 옛날부터 그렇게 떠 있었던 듯
허공에 어슴푸레 드러나는 ♡ 하트 하나.
비를 피할 나뭇잎 한 장 없이 맨 몸으로 비를 받아내며
지금 바로 이 순간 우주에는 오직 둘만이 존재한다는 듯
신이 명한 의식을 치르는 잠자리 한 쌍.
사위는 장엄토록 고요했다.
- <문학사상> 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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