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단시조

적(寂) / 김영주

꿍이와 엄지검지 2013. 10. 22. 14:50

 

 

적(寂)

- 그때 난 차 안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영주

 

잠자리 두 마리가 장대 같은 빗속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비를 잊고 있었다

 

순간이

전(全) 생인 것처럼

소지(燒紙)올리듯

그렇게

 

 

 

<시작노트>

 

장대같이 쏟아지던 빗줄기 속에서 나는 무성영화 한 컷을 본다.

빗줄기는 오래된 영화필름의 스크래치처럼 차창을 긋고

까마득한 옛날부터 그렇게 떠 있었던 듯

허공에 어슴푸레 드러나는 ♡ 하트 하나.

비를 피할 나뭇잎 한 장 없이 맨 몸으로 비를 받아내며

지금 바로 이 순간 우주에는 오직 둘만이 존재한다는 듯

신이 명한 의식을 치르는 잠자리 한 쌍.

 

사위는 장엄토록 고요했다.

 

 

- <문학사상>  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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