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살 많은 여자 / 이영혜

꿍이와 엄지검지 2015. 6. 30. 09:51

 

살 많은 여자

​​이영혜

 

나를 입고 내가 두른 살들과 한 몸으로 여기까지 왔다

오행이 다 들어와 있다는 내 사주팔자에도 필시

() 사이사이 마블링처럼 살()이 끼어있음이 틀림없는데

내 안과 밖의 살들은 내 정신과 육체의 실존이어서

나의 상징이자 정체성이었던 볼살 허벅지살에

생존을 위한 애교살 애살에 엄살까지...... 더해가며......

살들과의 전쟁에서 하루도 자유롭지 못했지만, 모질지 못하여

한 근의 살도 쉽게 덜어내지 못했다

울 엄마 난산에 나, 몸에 피를 묻히고 태어났는지

도화살에 뭇 남자들이 던져준 난분분 꽃잎으로 쉬이 붉게 물들었고

역마살에 마음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계절마다 가슴앓이, 고독과 벗해왔으며

백정의 드센 팔자라는 백호살에 손에 피 묻히며 살풀이하듯 살아왔다

하지만,

불화하던 오랜 살들과 조금은 화해하게 되었으니

볼살 허벅지살은 동안과 젊음의 대세가 되었고

도화살 덕분에 시인 이름 얻었을 것이고

역마살 타고 내 발걸음은 세상 저 멀리 달려나갈 것이며

외과 계통 의사들에게 백호살이 많다니

내 직업 선택을 자위함이다

차도르나 부르카 안에 내 안팎의 살 다 가리고

그대 앞에 서고 싶었으나......

나 이제, 늘어나는 뱃살 나잇살 주름살까지

영영 동행할 나의 실존으로 받아들이려 하니

살아 살아, 나의 살들아!

사라지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 , , 살 더 잘 살아 보자꾸나

 

시산맥, 201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