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박해성 시인의 <젊은 날의 초상><귀뚜라미><꽃을 심다><한통속>

꿍이와 엄지검지 2016. 2. 6. 07:31







젊은 날의 초상


박해성


빨랫줄에 펄럭이는

혁명투사

체 게바라


가을볕에 잘 마른

두 팔을 휘두르며


울려고 내가 왔던가,

십팔번을 꺾으신다



귀뚜라미


박해성


내가 버린 남자 있다

한 철 사랑에 운다


불 꺼진 창가에서

껍질만 매달려 운다


그믐달 삭은 관절에

숨어 운다,


나도 운다



꽃을 심다


박해성


꽃나무 한 그루 산다

심을 땅도 없는 내가

미풍에도 꽃내가 백리 간다 백리향이고

천리쯤 향기롭더라, 천리향이라 부르는


천리만리 간다 해도 구천에 닿겠냐만

잠 깊은 울엄니 꽃소식에 깨시려나

그 뿌리 가슴에 심고

꽃필 날 기다릴래



한통속


박해성


이파리 다 얼어 죽은 화분을 비워내다

실낱같은 숨결에 나도 몰래 손길 멈칫

누군가

살아있음이야,

두근두근 살피는 흙에


슬관절 툭 불거진 묵은 뿌리에 매달려

오물오물 젖을 빠는 세상에, 고 말간 젖니

한 통 속

시작과 끝이

한통속으로 얽혀있네




<루머처럼, 유머처럼>  현대시학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