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박지현 시인의 <습성> <나를, 지난다> <꽃> <공지천 오리>

꿍이와 엄지검지 2016. 2. 6. 07:29





습성


박지현


누구는

길 한 복판을

점령군처럼 걸어가고

또 누군 떠밀리듯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아무도

눈여겨보지않는 봄꽃 분분한 난전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쑥떡쑥떡 혀 굴린 소리

소리로만 눙치면

아랫목인지 변방인지

귀명창 불러들여도 감 잡을 재간 없는데


분명 오늘도

세상 한 가운데로 걸었다는

자고 나면 외나무 위

펄럭이고 있다는

자꾸만 되돌아 걷는 저녁 한 때의 몽유




나를, 지난다


박지현


내 안의 가파른 벽을 담쟁이가 오른다


바람에 허물어져 갈 길이 지워져도


멈췄다, 다시 내딛는 저 등허리가 환하다



어쩌다 발 미끄러져 꿈길을 벗어나면


탯줄의 기억 하나 가등처럼 켜들고


진물의 저 붉은 상처 푸르게 덮고 간다





박지현


햇빛 환한

골목가

플라스틱 화분 하나


달리아

수국 채송화

민들레가 덤으로 핀다


할머니

의자에 기대

하얗게 피고 있다




공지천 오리


박지현


공지천 물 위에 오리유람선 둥둥 떠 있다

뱃속에 들어앉아 발틀 돌리는 저 사람들

잔잔한 물 그늘 속에 휴일오후가 후끈하다


이따금 오리들이 유람선을 쪼아보지만

제 앞의 길 놓칠까 제 중심을 잃을까

결전의 그 날을 위해 슬금슬금 뒷걸음친다


누구를 흉내내며 대신 살아보는 일은

창자까지 비우고 바닥에 몸 붙이는 일

나 아닌 타인의 삶도 낯설긴 매한가지



<미간>  시와소금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