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이종문 시인의 시집 <<아버지가 서 계시네>> - 황금알

꿍이와 엄지검지 2017. 1. 23. 14:04

 

 

 

지팡이 톡, 부러지네

 

이종문

 

곧장

땅에 누워

땅이 될

할머니가

땅에다

지팡이 짚고

땅을 밟고

버티면서

그 땅과 맞장 뜨는데

지팡이 톡,

부러지네

 

 

'위험'에다 발을 딛고

 

이종문

 

'지뢰'나

'위험'같은

낱말들을 알 리 없다

 

물총이나

쏘며 노는

저 천진한 물총새는

'지뢰밭

위험' 표시도

그 물론 알 리 없다

 

하여

저 강물을

이글이글 싸지르는

 

미치고 환장할 놀, 그 불티에 취해 있다

 

'지뢰밭 위험' 표시의

'위험'에다

발을

딛고

 

 

세상에!

 

이종문

 

그것참

희한하네

그 조그만 구멍에서

앞발이 나오더니

몸뚱이가 나오더니

뒷발이 빠져나오니

송아지네

세상에!

 

이윽고

그 송아지

뒤뚱뒤뚱 일어나서

거기가 거긴 줄을

대체 어찌 알았는지

어미의 젖꼭지 물고

젖을 빠네

세상에!

 

 

니가 와 그카노 니가?

- 민달팽이 하시는 말

 

이종문

 

   니가 하마터면 날 밟을 뻔 하고서는 엄마아~ 비명 치

며 아예 뒤로 넘어가데

 

   죽어도 내가 죽는데 니가 와 그 카노 니가?

 

 

아 이거야 나 원 젠장!

 

이종문

 

   끈 떨어진 옛 친구에게 시집 한 권 붙이려고 근무하는

회사에다 전화를 걸었더니, 녹음된 코맹맹이의 아가씨

가 나온다

 

   뭐는 1번, 뭐는 2번, 뭐는 3번, 뭐는 4번, 5.6번,

7.8번은 제 각각 뭐라는데, 몇 번을 눌러야 할지 도무

지 모르겠다

 

   3번을 눌렀더니 4번으로 하라 하고 4번을 눌렀더니 7

번으로 하라기에, 전화를 다시 걸어서 7번으로 눌렀다

 

   7번 아가씨에게 연락처를 물었더니 개인정보 보호법

에 어긋나는 일이라서, 가르쳐 줄 수 없단다, 아 이거야

나 원 젠장!

 

 

 

<<아버지가 서 계시네>>  2016 황금알

 

 

시, 재미있어야 읽는다.  시집, 재미있어야 읽는다.  

시인의 저 능청을 어디에 견줄까. 

선생님의 시조는 항상 그 자리가 바로 우주만물의 중심이다.

마흔 다섯 자의 우주 안에 "!" 느낌표 하나로 정적(靜寂)을 만든다.

엉뚱발랄하시면서도 훈장님의 품격을 잃지 않으시는 시인.

- 김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