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공화순 시인의 시집 <<모퉁이에서 놓친 분홍>>

꿍이와 엄지검지 2018. 12. 20. 15:07

 



꽃게를 손질하며


공화순


꽃게를 손질하며 독해지는 나를 본다

집게발 무섭다고 냉동 게만 찾던 손이

치켜든 집게발을 끊어 공격을 봉쇄하고


필사의 몸부림을 해체하는 25년차 주부

등껍질을 떼어내고 헐떡이는 속살에

불현듯 비감에 젖는 스산한 봄날 저녁


산 게가 맛있다며 생생함에 솔깃하여

유난히 펄떡이는 산 놈만 골라다가

맛있는 식탁을 구실로 벌어지는 살육전



상태 메시지


공화순


오늘도 잘 있다며

글자가 웃고 있다


한때는 안부하며 지냈던 인연들을


프로필 들여다보며 저 혼자 인사한다


몇 달째 걸려 있는

똑같은 멘트에도


혹시나 안 좋은가 선뜻 묻지 못하고


너와 나 지난 거리를 문자로만 확인한다



2월 따지기


공화순


봄볕이 바짝 드는 운동장 한가운데


누가 지나갔나

우묵 파인 발 우물


가만히 발을 대보니 꿈틀 솟는 봄기운



얼음감옥 갇혔다가 기지개 켜는 대지


들썩들썩 부풀다가

씨앗도 품지 못해


헛배만 부풀리다가 발을 차고 터지네



나, 라는 수식어


공화순


나에게 딱 맞는 수식어를 찾다가

거울 속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부족함 외변하려다

보지 못한 내 모양



생김새 따라서 이름을 불러주듯

작고 또렷하다 붙여준 패랭이꽃


어쩌면 남들 다 보는 걸

나만 못 보는지 몰라



내 패터슨의 날


공화순


가장 평범한 것을 아름다움이라 말한다


소소한 내 일상도 시가 될 수 있을까


틈틈이 써내려가던 패터슨의 시처럼


반복되는 하루를 사랑할 수 있다면


변주 없는 생활도 노래할 수 있다면


오늘은 시를 쓰고 싶다, 아무 일도 없으니



<<모퉁이에서 놓친 분홍>>  2018 고요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