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박명숙 시인의 시집 <<그늘의 문장>>

꿍이와 엄지검지 2018. 12. 20. 15:22



쪽잠


박명숙


쪽잠을 자는 것은

쪽삶을 사는 것


잠이 자꾸 쪼개지면

삶도 그리 쪼개지나


살얼음

건너는 하룻밤을

잠자리마다 금이 가나



서너 시간 죽었다가

서너 시간 깨어보면


들고나는 잔 목숨이

처마를 잇대는 듯


절반쯤 

열린 창문이

반쪽 달을 물고 있다



소한 대낮


박명숙


냇물은 배를 곯아 무명실처럼 틀어지고


볕살도 뼈만 남아 앙상한 소한 대낮


목울대 꼿꼿이 세운 고요 한 척 끓고 있다



가을 공양


박명숙


햇살의 꽁무니쯤

그늘의 정수리쯤


오지랖 벌리고서 받아 든 감나무잎


절반은 벌레 먹히고

절반은 물들었네



방문


박명숙


가난한 김 선생이 더 가난한 내게 와서


옆집 가난을 말하다 제 가난은 잊어버리고


한숨을 들이쉬더니 한번 웃고 돌아갔다



<<그늘의 문장>>  동학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