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노부부가 잡은 손이 떨고 있는 극락 풍경
<53> 김영주 시인의 '오리야 날아라'
집에서 키우는 가금류인 오리가 조류인플루엔자 등으로 병이 걸리자 집단폐사 시키는 모습을 통해 효율과 돈 중심 사회의 무자비함과 인생을 동시에 풍자하고 있다. 오리는 더럽고 좁아터진 장소에서 다량 사육되면서 세균에 면역력이 약해져서 병에 걸린다. 이런 기업식 사육은 가축의 집단 폐사를 가져온다. 집단으로 병에 걸린 오리는 사육장 문이 열리자 생전 처음으로 자유를 만나 설렌다. 앞서가는 오리를 따라가며 설렌다. 냄새나는 사육장에서 처음으로 나와 밖에서 맡아보는 공기는 신선하고 맛있다. 마냥 즐겁다고 꽥꽥 댄다. 그러나 이렇게 몰려가는 오리들의 종착지는 포크레인이 파놓은 구덩이다. 기업식 가축사육은 병든 것이든 성한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가리는 데 돈이 더 들기 때문이다. 일괄 처리하는 것이 돈이 적게 든다.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 자본주의를 풍자한다. 그러면서 인생도 이렇다는 것을 암시다. 여기저기 무리를 짓거나 앞에 가는 사람을 마냥 따라가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정치적 상상력과 인생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형상하는 김영주 시인은 1959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2009년 월간 『유심』으로 등단하였다. 시조로 등단하였지만 시조 형식을 확 벗어던졌다. 시집의 많은 시편들이 한국의 사회정치적 쟁점을 다루기도 하지만, 인간의 사랑을 따뜻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한적한 시골시장 오래 된 묵밥집에 백발의 할매 할배 나란히 앉아 있다 둥그런 엉덩이의자에 메뉴도 한 가지뿐 반 그릇도 남을 양을 한 그릇 씩 놓고 앉아 한 술을 덜어주려 반 술은 흘려가며 간간이 마주보면서 파아 하고 웃는다 해는 무장무장 기울어만 가는데 최후의 만찬 같은 이승의 저녁 한 끼 식탁 밑 꼭 쥔 두 손이 풀잎처럼 떨고 있다 - '만종' 전문 '만종'은 늙은 부부의 이야기다. 한적한 시골 시장의 묵밥집 풍경이다. 늙어서도 변하지 않는 부부애가 아름답다. 시골의 보잘 것 없는 둥그런 엉덩이의자와 메뉴도 한 가지뿐인 식당에서 노부부는 묵밥을 서로 덜어주느라 반은 흘려가면서도 간간이 마주보면서 웃고 있다. 시간은 이 노인들의 인생처럼 해도 기울어 가는 저녁이다. “최후의 만찬 같은 저녁” 모습이 마냥 아름답기만 하다. 식탁 아래로 쥐고 있는 노부부의 여읜 두 손이 수전증으로 떨고는 있지만 아름다운 극락의 풍경이다. 김영주의 시는 이처럼 난해 난잡하지 않아서 좋다. 제재의 신선한 발견과 비유도 그렇고, 동시적 발상과 인생론적 사유, 사회정치적 상상력도 맛깔나게 표현해 낸다. 사회와 인생, 그리고 산뜻한 동시적 감각을 충전하기에 좋은 시집이다. ◇오리야 날아라=김영주 지음/현대시학/136쪽/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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