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나의 시

궁평리에서 / 김영주 (제2회 이달의 낭송하기 좋은 시 - 한국시낭송협회 낭송시 수상)

꿍이와 엄지검지 2020. 6. 2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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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평리에서

김영주

우리는 천천히 방파제를 걸었다
사랑을 몰랐던
바다를 몰랐던
그 때 그 어린 시절 가질 줄 몰랐던 나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약속
그러나 오래된 약속을 지키듯 그렇게
천천히 노을을 향해 걸어갔다

격조한 세월 앞에 이야기는 툭툭 끊겨
나는 이따금 부풀린 몸짓으로 나를 들켰지만
너는 아버지처럼 너털웃음을 웃었고
나는 아직도 열여섯 계집애처럼 두근거렸다

 

오늘 하루도 리허설이라고, 너는
삶에 무슨 리허설이 있느냐고, 나는
어제는 오늘을 위한
오늘은 내일을 위한
연습이었노라고 넌 말했다

어디쯤 가고 있었을까
한번도 연습을 모르고 살아온 나와
날마다 연습처럼 살아온 너와
가슴 가득 노을을 들이키며
바다로 바다로 걸어가는 두 오늘은
어디쯤에서 뒤돌아본 것일까

나른한 수평선이 긴 눈을 감는다
붉어진 눈시울 속에서
한참을 발 담그고 서 있던
두 노을
두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