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연시조

느티 / 김영주

꿍이와 엄지검지 2022. 1. 18. 15:21

느티

 

김영주

 

첫 아이 낳던 그날 보호자 서명란에

또박또박 눌러쓴 당신의 이름 석 자

든든한 느티나무처럼 그 그늘 아늑했다

 

아이들 키우면서 부모로 익어가며

큰아들 작은아들 보호자로 사는 일도

마땅히 누려야 하는 특권으로 알았다

 

살면서 아웅다웅

너 먼저 가, 나 먼저 가

지지고 볶던 일이 새삼스레 서럽다

넘치는 분복인 것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꿈에도 이런 날은 오지 않길 바랐지만

태어나면 늙는 걸

늙으면 병드는 걸

숙제를 다 마쳐야만 비로소 안식인 걸

 

호흡기만 저 혼자 쌔액쌕 숨을 쉰다

이저승 경계에서 얼마나 외로울까       

그 고통 눈물 없이는 읽을 수가 차마 없다

 

감당 못 할 무거움이 사치처럼 밀려온다

살아줘 고맙단 말 혼몽에라도 듣는지…

오늘은 보호자란에 내 이름을 눌러 쓴다

 

<<개화30>> 2021 연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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