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 유홍준

꿍이와 엄지검지 2011. 8. 31. 09:39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유홍준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둥글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사람이 사람을 앉히고 발톱을 깎아준다면
정이 안 들 수가 없지
옳지 옳아 어느 나라에선
발톱을 내밀면 결혼을 허락하는 거라더군
그 사람이 죽으면 주머니 속에 발톱을 넣어 간직한다더군

평생 누구에게 발톱을 내밀어 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단 한 번도 발톱을 깎아주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발톱을 예쁘게 깎아주는 사람은
    목덜미가 가늘고
    이마가 예쁘고 속눈썹이 길다더군 비가 오는 날이면
    팔베개도 해주고 지짐도 부쳐주고 칼국수도 밀어준다더군
    그러니 결혼을 안 할 수가 있겠어
    그러니 싸움을 할 수가 있겠어

    발톱을 깎는 사람의 자세는
    고양이에 가깝고
    공에 가깝고
    뭉쳐놓은 것에 가깝다네 그는 가장 작고 온순하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 유홍준, <발톱깎는 사람의 자세>  <<서정시학>>  2010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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