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유홍준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둥글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사람이 사람을 앉히고 발톱을 깎아준다면
정이 안 들 수가 없지
옳지 옳아 어느 나라에선
발톱을 내밀면 결혼을 허락하는 거라더군
그 사람이 죽으면 주머니 속에 발톱을 넣어 간직한다더군
평생 누구에게 발톱을 내밀어 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단 한 번도 발톱을 깎아주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발톱을 예쁘게 깎아주는 사람은
목덜미가 가늘고
이마가 예쁘고 속눈썹이 길다더군 비가 오는 날이면
팔베개도 해주고 지짐도 부쳐주고 칼국수도 밀어준다더군
그러니 결혼을 안 할 수가 있겠어
그러니 싸움을 할 수가 있겠어
발톱을 깎는 사람의 자세는
고양이에 가깝고
공에 가깝고
뭉쳐놓은 것에 가깝다네 그는 가장 작고 온순하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 유홍준, <발톱깎는 사람의 자세> <<서정시학>> 2010년 가을
'♡♡♡ > 시인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두커니 서 있었다 - 墨枾牒 / 박기섭 (0) | 2011.09.15 |
---|---|
덩굴장미 / 박해성 (0) | 2011.08.31 |
솔티재를 넘으며 / 최정란 (0) | 2011.07.05 |
비행운 그리기 / 장지성 (0) | 2011.07.05 |
빈집의 家系 / 박기섭 (0) | 2011.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