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김영주
뭐시여 수빼기라고라
고거시 뭐시간디
느검니 이름이여 느가부지 이름이여
그딴거 모르고 살았어도
시집 장개 잘 갔어야
오살헐 놈의 세상 호랭이도 안 물어갈
수빼기 따져싸코
코빼기 따져싸코
매갑시 가방끈내끼만 늘켜싸면 다이다냐
이냥 살기 폭폭헝께 심키우자 그말이겄재
해주고 자파도 쥐뿔도 못 해중께
뱁새가 황새 쫓다가
가랭이 째질까
그래그라제
* 스펙 - Specification의 준말. 이 스펙이라는 말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재산, 외모 등 배우자 또는 교제 대상에게 기대하는 조건이나 능력을 증명하는 새로운 부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대체로 성격, 취미 같은 내적인 측면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시작노트>
아들 둘 키우면서 가난한 엄마의 걱정이 아들을 앞지른다.
부모가 만들어준 포트폴리오는 너무나 빈약해서
감히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방패막에는 택도 못 미친다는 것이 서글프다.
그렇게 가르치고도 기대해야하는 미래는 88만원 세대.
그나마 보장된 싸이트도 아니다.
숨이 턱에 차게 달려가도 가는 놈은 가고
못 가는 놈은 못 갈 텐데
그럴 바에는 마음이라도 편케,
아니 건강이라도 해치지 않게 한 템포 늦춰 가고,
한 단계 낮춰 가면 지켜보는 나도 이토록 숨 막히진 않을 텐데.
책임지지도 못할 미래는 어른들이 만들어놓고 아이들에게 맞춰 살라 한다.
힘에 부치면 그만 두어도 좋아,
몸과 마음 바르게만 살아, 라는 말을
부모가 되어갖고 당당하게 해주지 못하는 이 비애.
그래, 너희들 걱정이라도 덜어주려면
부모는 또 부모대로 노후를 위한 스펙을 쌓아가야 하겠지.
- <<쿨투라Cultura>> 2012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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