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격에 대한 의문
시조를 쓰기 시작하면서 자꾸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쓰고 있는 게 시조 맞는지.
현대시조는 자수율보다 음량(量) 곧, 음보율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자수율로 파악한 것은 한자를 쓰는 중국과 일본의 시를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 음량을 모라( mora-단음절이 차지하는 시간의 단위, 또는 시간적 길이를 지닌 음의 분절 단위)라고 하는데
저는 이 모라를 음표로 따져 한 박자로 이해합니다.
한 음보를 한 마디로 치면 한 마디 안에서 4분음표를 네 박자 연주하라는 뜻으로요.
한 마디 안에서 기본 네 박자를 연주해야하는데 두 자나 다섯 자가 오면
음독할 때 두 자는 늘려 읽고 다섯 자는 빠르게 읽게 되겠지요. 음량을 맞추는 겁니다.
3 / 3 : 3 / 3 (초장)
앞구 : 뒷구
3 / 4 : 3 / 4 (중장)
앞구 : 뒷구
3 / 5 : 4 / 3 (종장)
앞구 : 뒷구
초장, 중장, 종장 -> 3 장이구요
각 장마다 구가 여섯개-> 6 구구요
편의상 마디로 갈라놓은 음보가 -> 열두 개
3장 6구 12음보 마흔 석자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시조란? 하면
"삼 장 육 구 십이 음보, 마흔다섯 자 내외"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마흔다섯 자 내외'
*정의에서 이미 융통성이 부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디 안의 4(네 자)를 평음보라하고
종장의 첫음보 3을 소(少)음보,
종장의 두번째 음보 5를 과(過)음보라고 하는데
각 음보에서 +,- 한 두자까지는 허용합니다.
3, 4가 적게는 2에서 많게는 5-6까지도 허용이 된다는 뜻입니다
(*한 글자로 한 음보를 채우는 경우도 봤는데 저는 피합니다.)
**그리고 종장 첫 음보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3음절이어야 하며
두번째 음보는 반드시 5음절 이상이어야 합니다.
3/4/3/4
3/4/3/4
4/4/3/4
로 시를 지어놓고 시조 좀 봐 달라고 하면 이건 시조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습니다.
종장의 소음보와 과음보(다섯자 이상)를 지키지 않아서죠.
우리의 시조 종장에서의 3,5는 매우 중요하며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고시조를 찾아봤습니다.
가마귀 / 검다하고 / 백로야 / 웃지마라(3.4.3.4.)
겉이 / 검은 들 / 속조차 / 검을소냐(2.3.3.4.)
아마도 (3)
겉 희고 속 검은 이는(8)
너뿐인가 하노라
- 이직
중장 앞구의 '겉이 검은 들' 을 저는 부족한 음량으로 봅니다.
지난 주 언급한 주거니 : 받거니, 콩닥 : 콩닥 에서 뒷 저울이 쳐집니다.
저라면 이렇게 앞의 음보(겉이)가 부족하면 뒤에 음보(검은들)라도 지켜주는 식으로 전체 음량을 조절합니다.
음독할 때에는 '겉-이이 / 검은 드을' 하고 늘여 음독해야겠지요.
'겉 희고 속 검은 이는'은 여덟 개의 음절을 네 박자로 연주하려니 8분음표로 급하게 읽게 됩니다.
인생이 / 둘가 셋가 / 이 몸이 / 네 다섯가
빌어온 / 인생이 / 꿈의 몸 / 가지고서(3,3,3,4)
평생에
싸울 일만 하고 (6)
언제 놀려 하나니
- 미상
청초 / 우거진 골에 / 자난다 / 누웠난다(2,5,3,4)
홍안을 / 어듸 두고 / 백골만 / 묻혔난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6)
그를 슬허하노라
- 임제
재미난 걸 발견했습니다.
천부지재하니 / 만물의 / 부모로다 (6.3.4)
부생모육하니 / 이 내의 / 천지로다(6.3.4)
이 천지 / 저 천지 즈음에 (3,6)
늙을 뉘를 모로리라
- 이정환
'천부지재하니' 한 어절인데 이걸 6음보로 이해하느냐, 2,4음보로 이해하느냐..
시조가 시절가조인 점을 생각하면 노랫말이니
'천부 + 지재하니'로 분절 이해해야겠습니다.
'부생 + 모육하니'도 마찬가지구요.
이렇게 피할 수없는 경우에는 저라면 '천부요 지재하니' 라던가
'천부 V 지재하니 하고 띄어 표기했을 것 같습니다.
녹이상제 / 살지게 먹여 / 시냇물에 / 씻겨 타고(4,5,4,4)
용천설악 /들게 갈아 / 둘러메고(2+2,4,4)
장부의 / 위국충절을 / 세워 볼까 / 하노라(3,5,4,3)
-최영
중장이 위태롭죠? 앞구가 한음보 부족합니다. 정격이 아닙니다.
'용-천- / 설-악-'
음량을 맞추자면 이렇게 음독해야겠습니다.
종장의 과음보를 보겠습니다.
동짓달 / 기나긴 밤을 / 한허리를 / 둘러내여(3,5,4,4)
춘풍 / 이불 아래 / 서리서리 / 넣었다가(2,4,4,4)
어룬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8)
구뷔구뷔 펴리라
- 황진이
과음보에 여덟자를 썼습니다.
하물며
어약연비 운영천광이야(10)
어늬 그지 있으랴
- 이황, <춘풍에 화만산 하고>
열자까지 허용했네요.
아희야
박주산채일망정 (7)
없다 말고 내어라
- 한호, <짚 방석 내지마라>
저 물이
거스리 흐르과저 (7)
나두 울어 보내리라
- 원호, <간밤에 우던 여흘>
평생에
악된 일 아니하면 (7)
자연 위선 하리라
- 작자미상, <선으로 패한 일 보며>
이렇듯 시조의 정형율은
3.4.3.4./ 3.4.3.4./ 3.5.4.3 이 기본이겠으나 글자수가 더하거나 빠져도
시조의 정형율로 문제 삼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 조동일 교수는
"고시조를 분석한 결과 초장 중장 종장이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은 고작 4%에 지나지 않는데도
이를 시조의 정형이라고 고집할 수 있느냐. 전체의 4% 정도에 해당하는 것을 정형으로 삼는다면
시조는 실상과는 사뭇 다르게 이해되고, 시조의 창작방향도 왜곡 된다." 했습니다.
-『한국 시가의 전통과 율격』 (1982)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습니다.
어려웠던 형식 안에서 좀더 자유로워짐을 느낍니다.
아쉬움은 더 고뇌하면 틀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데 대충 끝냈다는 느낌이 들 때입니다.
형식에 꿰맞추기 위해 넣지 않아도 좋을 조사를 넣거나 혹은 꼭 필요한 조사를 빼거나
줄이거나 혹은 늘인 말이 누가 봐도 작은 옷 속에 구겨넣은 불편한 몸을 생각하게 할 때
형식에 대해 더욱 엄격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고시조를 파악하고 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식을 알고 벗어난 것과 이해없이 정격에서 벗어난 것은 누가 봐도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작품 몇 개 함께 나눕니다.
이영도
사흘 안 끓여도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누름 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보네
털
김동찬
박남철 시집을 읽다 눈에 띈 긴 털 하나
모른 체 하기도, 책을 놓기도 싫었다
독서를 마칠 때까지 입에 물고 있기로 했다
소중하지 않은 것도 물고 있을 때가 있다
너의 입에 나의 입에 잠시 그렇게 머물러서
서로를 어쩌지 못한 채
시간이 가고
한 생이 가고…
기도실
강현덕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소낙비
김문억
모름지기 이렇게 한 번 울어본 적 있느냐
발가벗고 부끄럽지 않게 통곡한 적 있느냐
맨발로 저리 고꾸라지며 뛰어본 적 있느냐
서울 1
서벌
내 오늘
서울에 와
만평 적막을 사다
안개처럼 가랑비처럼
흩고 막
뿌릴가 보다
바닥난 호주머니엔
주고 간
벗의 명함
푸른 기억
이태정
술 취한 아비는 언제나 매질이었다
"제 어미 닮아서 하는 짓도 제 어미라"
엄마를 닮았다는 말
매보다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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