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의 시조산책

[스크랩] 정격에 대한 의문 - 음보

꿍이와 엄지검지 2018. 2. 7. 09:43

정격에 대한 의문



 

시조를 쓰기 시작하면서 자꾸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쓰고 있는 게 시조 맞는지.


현대시조는 자수율보다 음량() , 음보율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자수율로 파악한 것은 한자를 쓰는 중국과 일본의 시를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 음량을 모라( mora-단음절이 차지하는 시간의 단위, 또는 시간적 길이를 지닌 음의 분절 단위)라고 하는데

저는 이 모라를 음표로 따져 한 박자로 이해합니다.

한 음보를 한 마디로 치면 한 마디 안에서 4분음표를 네 박자 연주하라는 뜻으로요.

 

한 마디 안에서 기본 네 박자를 연주해야하는데 두 자나 다섯 자가 오면

음독할 때 두 자는 늘려 읽고 다섯 자는 빠르게 읽게 되겠지요. 음량을 맞추는 겁니다.


3 / 3 : 3 / 3 (초장)

 앞구 : 뒷구


3 / 4 : 3 / 4 (중장)

 앞구 : 뒷구


3 / 5 : 4 / 3 (종장)

 앞구 :  뒷구

   

초장, 중장, 종장 -> 3 장이구요

각 장마다 구가 여섯개-> 6 구구요

편의상 마디로 갈라놓은 음보가 -> 열두 개

3장 6구 12음보 마흔 석자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시조란? 하면

"삼 장 육 구 십이 음보, 마흔다섯 자 내외"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마흔다섯 자 내외'


 *정의에서 이미 융통성이 부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디 안의 4(네 자)를 평음보라하고

종장의 첫음보 3을 소(少)음보,

종장의 두번째 음보 5를 과(過)음보라고 하는데 

각 음보에서 +,- 한 두자까지는 허용합니다.

3, 4가 적게는 2에서 많게는 5-6까지도 허용이 된다는 뜻입니다

(*한 글자로 한 음보를 채우는 경우도 봤는데 저는 피합니다.)

  

**그리고 종장 첫 음보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3음절이어야 하며

두번째 음보는 반드시 5음절 이상이어야 합니다.


3/4/3/4

3/4/3/4

4/4/3/4               

   

로 시를 지어놓고 시조 좀 봐 달라고 하면 이건 시조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습니다.

종장의 소음보와 과음보(다섯자 이상)를 지키지 않아서죠.

우리의 시조 종장에서의 3,5는 매우 중요하며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고시조를 찾아봤습니다.

  

가마귀 / 검다하고 / 백로야 / 웃지마라(3.4.3.4.)

겉이 / 검은 들 / 속조차 / 검을소냐(2.3.3.4.)

아마도 (3)

겉 희고 속 검은 이는(8)

너뿐인가 하노라

- 이직

  

중장 앞구의 '겉이 검은 들' 을 저는 부족한 음량으로 봅니다.

지난 주 언급한 주거니 : 받거니, 콩닥 : 콩닥 에서 뒷 저울이 쳐집니다.

저라면 이렇게 앞의 음보(겉이)가 부족하면 뒤에 음보(검은들)라도 지켜주는 식으로 전체 음량을 조절합니다.

음독할 때에는 '겉-이이 / 검은 드을' 하고 늘여 음독해야겠지요.

 

'겉 희고 속 검은 이는'은 여덟 개의 음절을 네 박자로 연주하려니 8분음표로 급하게 읽게 됩니다.

    

인생이 / 둘가 셋가 / 이 몸이 / 네 다섯가

빌어온 / 인생이 / 꿈의 몸 / 가지고서(3,3,3,4)

평생에

싸울 일만 하고 (6)

언제 놀려 하나니

- 미상

 

청초 / 우거진 골에 / 자난다 / 누웠난다(2,5,3,4)

홍안을 / 어듸 두고 / 백골만 / 묻혔난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6)

그를 슬허하노라

- 임제

 

재미난 걸 발견했습니다.

 

천부지재하니 / 만물의 / 부모로다 (6.3.4)

부생모육하니 / 이 내의 / 천지로다(6.3.4)

이 천지 / 저 천지 즈음에 (3,6)

늙을 뉘를 모로리라

- 이정환

 

'천부지재하니' 한 어절인데 이걸 6음보로 이해하느냐, 2,4음보로 이해하느냐..

시조가 시절가조인 점을 생각하면 노랫말이니

'천부 + 지재하니'로 분절 이해해야겠습니다.

'부생 + 모육하니'도 마찬가지구요.


이렇게 피할 수없는 경우에는 저라면 '천부요 지재하니' 라던가

'천부 V 지재하니 하고 띄어 표기했을 것 같습니다.


녹이상제 / 살지게 먹여 / 시냇물에 / 씻겨 타고(4,5,4,4)

용천설악 /들게 갈아 / 둘러메고(2+2,4,4)

장부의 / 위국충절을 / 세워 볼까 / 하노라(3,5,4,3)

-최영

 

중장이 위태롭죠? 앞구가 한음보 부족합니다. 정격이 아닙니다.


'용-천- / 설-악-'

음량을 맞추자면 이렇게 음독해야겠습니다. 


종장의 과음보를 보겠습니다.

  

동짓달 / 기나긴 밤을 / 한허리를 / 둘러내여(3,5,4,4)

춘풍 / 이불 아래 / 서리서리 / 넣었다가(2,4,4,4)

어룬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8)

구뷔구뷔 펴리라

- 황진이

  

과음보에 여덟자를 썼습니다.

 

하물며

어약연비 운영천광이야(10)

어늬 그지 있으랴

- 이황, <춘풍에 화만산 하고>

  

열자까지 허용했네요.

 

아희야

박주산채일망정 (7)

없다 말고 내어라

- 한호, <짚 방석 내지마라>

 

저 물이

거스리 흐르과저 (7)

나두 울어 보내리라

- 원호, <간밤에 우던 여흘>

 

평생에

악된 일 아니하면 (7)

자연 위선 하리라

- 작자미상, <선으로 패한 일 보며>

 

이렇듯 시조의 정형율은 

3.4.3.4./ 3.4.3.4./ 3.5.4.3 이 기본이겠으나 글자수가 더하거나 빠져도

시조의 정형율로 문제 삼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 조동일 교수는

"고시조를 분석한 결과 초장 중장 종장이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은 고작 4%에 지나지 않는데도

이를 시조의 정형이라고 고집할 수 있느냐. 전체의 4% 정도에 해당하는 것을 정형으로 삼는다면

시조는 실상과는 사뭇 다르게 이해되고, 시조의 창작방향도 왜곡 된다." 했습니다.

-한국 시가의 전통과 율격』 (1982)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습니다.

어려웠던 형식 안에서 좀더 자유로워짐을 느낍니다.


아쉬움은 더 고뇌하면 틀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데 대충 끝냈다는 느낌이 들 때입니다.


형식에 꿰맞추기 위해 넣지 않아도 좋을 조사를 넣거나 혹은 꼭 필요한 조사를 빼거나

줄이거나 혹은 늘인 말이 누가 봐도 작은 옷 속에 구겨넣은 불편한 몸을 생각하게 할 때

형식에 대해 더욱 엄격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고시조를 파악하고 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식을 알고 벗어난 것과 이해없이 정격에서 벗어난 것은 누가 봐도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작품 몇 개 함께 나눕니다.


보릿고개


이영도


사흘 안 끓여도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누름 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보네


털 

 

김동찬

 

박남철 시집을 읽다 눈에 띈 긴 털 하나

모른 체 하기도, 책을 놓기도 싫었다

독서를 마칠 때까지 입에 물고 있기로 했다 


소중하지 않은 것도 물고 있을 때가 있다

너의 입에 나의 입에 잠시 그렇게 머물러서

서로를 어쩌지 못한 채

시간이 가고

한 생이 가고 

 

기도실

 

강현덕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소낙비

 

김문억

 

모름지기 이렇게 한 번 울어본 적 있느냐  

발가벗고 부끄럽지 않게 통곡한 적 있느냐  

맨발로 저리 고꾸라지며 뛰어본 적 있느냐


울 1

 

서벌

내 오늘

서울에 와

만평 적막을 사다

 

안개처럼 가랑비처럼

흩고 막

뿌릴가 보다

바닥난 호주머니엔

주고 간

벗의 명함

 

푸른 기억

 

이태정

 

술 취한 아비는 언제나 매질이었다

 

"제 어미 닮아서 하는 짓도 제 어미라"

 

엄마를 닮았다는 말

 

매보다 아팠다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김 영 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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