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비
박영식
임대한 지하통로 한철 겨울 이겨내고 등짐 진 세상 고뇌 내려놓은 시인 한 분 봄볕이 뒤틀린 관절 수리하고 있더니
하늘이 선심 써서 쌀비 수루루 쏟은 덕에 밥 푸던 이팝나무 한상 잘 차렸는데 입맛을 잃은 탓인지 그는 끝내 못다 먹고
후렴구 요령소리 앞세울 만장도 없이 툭 터진 환한 길 위 꽃상여 맨 가로수 어우렁 흔들거리며 도시 밖을 가고 있다
토우
박영식
니 지금 흙 주물러 뭘 그리 만들아 삿노 이건 니 쏙 빼닮은 내 각시 아이가 와 눈 삣나 영판 바보같이 내 그리도 못 생깃나
바보면 어떻고 잘 생기면 또 뭐하노 니캉 내캉 좋아서 죽고 못 살면 그 뿌이제 뭐라고 우리 아아들 다 바보 만들기가
니도 봤제 돈 있다고 까불랑 대는 걸마들 올매 못가 쪽박신세로 오도 가도 못하는 모르제 참말로 모르제 우리 같은 사랑 헤헤
검은 비닐봉지
박영식
시장 봐 들고 가는 저 검은 비닐봉지 불투명 그 속에는 무엇무엇 들어있나 누구도 펼치기 전엔 알 수 없는 수수께끼
한 때는 신문지가 포장지 대명사로 첨단의 시류 따라 획일화된 맞춤코드 때로는 음성적 거래 통로역할 했었고
수거차 몰려가는 진물 고인 매립장 묵언을 찢고 나운 붉은 고무장갑이 자본의 온갖 병폐를 시위하고 있었다
무無
박영식
내 존재의 첫 출발은 아주 미세한 물이었다 흘러 부딪쳐서 묘한 인연 만들었고 곡哭같은 생의 여로에 화음 몇 줄 보탰다
있음은 없음을 위한 회귀의 몸짓인 것 그 알몸 습한 일부는 바람에게 내어주고 빈 하늘 굴절된 시각으로 무지개로 떴다가
생각도 꽃송이도 모두 지운 한 순간 꺼질 듯 다시 한 번 빛을 파닥이다가 하늘천 따아지 외우며 이르게 된 무극無極
▪시인의 말
아무 생각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등 뒤쪽에서 툭 툭 따딱 물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좌우로 집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마치 어레미로 뭔가를 치는 듯했다
2016년 7월 5일 저녁 8시 33분 울산 동쪽 해상 규모 5.0 지진발생
순간 '어느 날 갑자기'란 말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렇구나, 삶이란... 또 한 권의 시집을 묶는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2016년 8월 박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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