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 / 이상국 서둘러 저녁이 오는데 헐렁한 몸뻬이를 가슴까지 치켜 입고 늙은 형수가 해주는 밥에는 어머니가 해주던 밥처럼 산천이 들어있다. 저이는 한때 나를 도련님이라고 불렀는데 오늘은 쥐눈이콩 한 됫박을 비닐봉지에 담아주며 아덜은 아직 어린데 동서가 고생이 많겠다고 한다. 나는 예라고 대답했다. - .. ♡♡♡/시인의 시 2009.11.10
떠도는 자의 노래 / 신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 ♡♡♡/시인의 시 2009.11.10
행복론 / 유자효 다정함 좀 쓸쓸함 슬프지 않고 멍들지 않음 사랑은 먼 사랑 소리는 저녁 빛깔 전율이 스쳐간 고장의 언덕에서 서성임. - 유자효, <행복론> 전문 ♡♡♡/시인의 시 2009.11.10
마지막 편지 / 홍성란 구절초는 꽃대 하나에 꽃 하나만 피운대요 꽃대 하나에 하얀 꽃 한 송이만 피운다고 귓바퀴에 꽂아주며 엄마는 웃었지요 시월하늘 구름도 구절초 꽃처럼 하얀 날 스물일곱 주방아줌 마는 짧은 편지 써놓고 아무도 모르게 먼저 갔대요 '먼저 가서 미안해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는데도 사주지 못해 미.. ♡♡♡/시인의 시 2009.11.10
중앙시조 백일장 10월 수상작 [중앙 시조 백일장] 10월 수상작 이달의 심사평 사소한 일상 끌어낸 신선한 감각에 박수 역시 결실의 계절이다. 가을산마다 단풍이 든 것처럼 응모작이 많았다. 장원은 김영주의 ‘그 아침의 비밀’이다. 화자는 새벽에 유리컵이라는 씨앗을 통해 “살과 살이 부딪치며 비명을” 지른다는.. ♡♡♡/리뷰 2009.11.04
시 창작 강의실에서 / 정일근 시 창작 강의실에서 눈을 감고 시(詩)를 만들려 하지 마라 시는 허공에 짓는 집이 아니라 백지 위에 또박또박 그리는 설계도이니 네가 짓는 집의 투명한 속을 보여다오 죽은 시집 속에서 죽어버린 말들을 꺼내지 마라 사전 속의 미라 같은 말들을 펼치지 마라 시는 살아 있는 동물이니 살려서 풀어놓아.. ♡♡♡/시인의 시 2009.06.05
상사 / 김남조 상사 언젠가 물어 보리 기쁘거나 슬프거나 성한 날 병든 날 꿈에도 생시에도 영혼의 철사줄 윙윙 울리는 그대 생각 천번 만번 이상하여라 다른이는 모르는 이 메아리 사시사철 내 한 평생 골수에 전화오는 그대 음성 언젠가 물어보리 죽기전에 단 한 번 물어보리 그대 혹시 나와 같았는지를... - 김남조.. ♡♡♡/시인의 시 2009.06.05
운주사에서 / 이명수 운주사(雲住寺)에서 천불산(千佛山) 천 년(千年) 계곡에 잠든 돌부처를 보라 기다리는 천 년 목숨을 보라 목 잘리고 팔 잘리고 들녘 풀섶에 손잡고 손잡고 누워 있는 사랑을 보아라 바람이 분다 남해를 휩쓸고 북상하는 태풍의 눈에 갇혀 저들처럼 손잡고 손잡고 하룻밤 우리도 이렇게 누워 있다 사는 .. ♡♡♡/시인의 시 2009.06.05
멀리 가면 안 된다 / 최영선 멀리 가면 안 된다 어느 눈부신 날의 외출에 행여 다칠까 염려되어 내 아이에게 하늘빛처럼 던진 이 말 멀리 가면 안 된다 풍성한 그늘 밑 도시락을 펴 놓고 함박웃음 피우며 앉아 던진 말에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 코끝이 찡하게 맵네 저만한 시절 내게도 던졌을 말 멀리 가면 안 된다 산 .. ♡♡♡/시인의 시 2009.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