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압정/ 이문재 민들레 압정 이문재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 ♡♡♡/시인의 시 2010.07.02
징검돌 / 이승은 징검돌 이승은 길이 뚝, 끊긴 곳을 그대 건너 가신다기에 참말 나 서슴없이 징검돌로 누웠습니다 세상 말 모두 닫은 채 징검돌로 누웠습니다 그 환한 부끄럼도 이냥저냥 감싸안고 손톱을 물어뜯던 물소리도 흘러두고 총총히 건너가시라 징검돌로 누웠습니다 ♡♡♡/시인의 시 2010.06.09
줄포에서 / 이상국 줄포에서 이상국 동해에서 조반을 먹고 줄포(茁浦)에 오니 아직 해가 남았다 나라는 게 고작 이 정도라면 나도 왕이나 한 번 해볼걸 큰 영 하나만 넘어도 안 살아본 세상이 있고 해 질 때 눈물나는 바다가 있는데 나는 너무 동쪽에서만 살았구나 해마다 패독산(敗毒散) 몇첩으로 겨울을 넘기며 나 지금 .. ♡♡♡/시인의 시 2010.06.04
허망에 관하여 / 김남조 내 마음을 열 열쇠꾸러미를 너에게 주마 어느 방 어느 서랍이나 금고도 원하거든 열거라 그러하고 무엇이나 가져도 된다 가진 후 빈 그릇에 허공부스러기쯤을 담아 두려거든 그렇게 하여라 이 세상에선 누군가 주는 이 있고 누군가 받는 이도 있다 받아선 내버리거나 서서히 시들게 놔두기도 하는 이.. ♡♡♡/시인의 시 2010.05.05
노루귀 / 공영해 노루귀 공영해 내 생의 골짜기 길 노루귀가 맞았다 물소리 따라가는 길은 혼자 가게 두고 귀 쫑긋 함께 듣잔다, 곤줄박이 저 재롱 ♡♡♡/시인의 시 2010.04.26
새아침을 위한 묵시록 / 손종호 새 아침을 위한 묵시록 손종호 강물이 푸르른 것은 하늘빛을 담을 가슴이 있기 때문입니다. 풀잎에 맺힌 그대의 이슬 같은 그리움과 바위틈을 비집고 일어서는 나의 작은 희망이 모여 한 줄기의 굳센 힘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것들은 언제나 맑아질 수 있습니다 고여 있는 것들이 내뿜는 권위.. ♡♡♡/시인의 시 2010.04.19
마라도에서 / 손종호 마라도에서 손종호 풍랑은 끝이 없다. 부둥켜안아도 쓰러져 울어도 뱃길은 오히려 바람에 끌려 먼 바다로 사라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기가 끝이라고 말한다. 공화국의 비리도 분단의 상채기도 여기까지라고 말한다. 거칠게 무너져 오는 파도의 눈부신 붕괴를 보며 빚진 자들이 소리친다. …갚아도.. ♡♡♡/시인의 시 2010.04.19
달집 태우기 / 김일연 이무기 뒤채고 있다 칠흑보다 검은 밤 당산 나무 부엉이도 자취를 감추었다 둥, 둥, 둥 흙의 가슴이 뛰고 있다 부풀고 있다 생솔가지 비린내 차오르는 대기 잉태한 여왕 위해 해산의 자리를 펴듯 어머니, 호롱을 닦고 심지를 올리신다 불을 댕겨라 활, 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십년 묵은 달집 불덩이가 .. ♡♡♡/시인의 시 2010.02.26
장도열차 / 이병률 이번 어느 가을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에 도착했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 - 이병률,.. ♡♡♡/시인의 시 2010.02.26
중장을 쓰지 못한 시조, 반도는 / 문무학 내쳐서 삼천리를 다 못가고 마는 땅 ................................. 가다가 뚝 끊긴 길 끝에 이념만이 선명한 - 문무학, <중장을 쓰지 못한 시조, 반도는> 전문 ♡♡♡/시인의 시 2010.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