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 오세영 1월 오세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에서 바람은 설.. ♡♡♡/시인의 시 2010.01.05
괴목槐木은 / 유준호 괴목槐木은 유준호 나이 좀 지긋해야 그래야 세상 알고 머리칼 좀 희끗희끗해야 사는 맛 느낀다고 뼛속이 텅 텅 빈 괴목은 점잔 빼어 그러지만. ♡♡♡/시인의 시 2009.12.30
리필 / 이상국 리필 이상국 나는 나의 생을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 쓰고 버린다 우주는 그걸 다시 리필해서 보내는데 그래서 해마다 봄은 새봄이고 늘 새것 같은 사랑을 하고 죽음마저 아직 첫물이니 나는 나의 생을 부지런히 풀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인의 시 2009.12.20
춤 / 김일연 배고픔 목마름 외로움 보다 먼저 춤추지 않는 춤은 이제 춤이 아니다 끔찍이 상처 난 언어는 이미 상처 입은 언어가 아니다. - 김일연, <춤> 전문 ♡♡♡/시인의 시 2009.12.20
반듯하다 / 박철 - 후배 K에게 나도 이제 한마디 거들 나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한 마디 하마 시를 쓰려거든 반듯하게 쓰자 곧거나 참되게 쓰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사진기 앞에 설 때 우뚝하니, 반듯하게 서 있는 것이 멋쩍어서 일부러, 어거지로, 더욱 어색하게 셔터가 울리길 기다리며 몸을 움직인다 말 그대로 .. ♡♡♡/시인의 시 2009.12.20
복사꽃 / 박현덕 그저 마냥 쳐다보는 첫사랑 여자 같은 것 긴 겨울의 격정 지나 가지마다 걸린 연등煙燈 이 봄날, 가슴 파고 드는 저것이 여시 같아라. * 연등 煙燈 : 아편에 불을 붙이는 등 - 박현덕, <복사꽃> 전문 ♡♡♡/시인의 시 2009.12.20
종소리 / 서정춘 한 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마라 돌아오지 마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 서정춘, <종소리> 전문 ♡♡♡/시인의 시 2009.12.20
바위길 / 김영재 바위가 막는 곳에 또 다른 길이 있다 바위가 길이 되어 사람을 걷게 한다 외로운 바위로 남아 길이 되는 사람 있다 - 김영재, <바위길> 전문 ♡♡♡/시인의 시 2009.12.20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그대 벽 저편에서 중얼댄 말 나는 알아들었다 발 사이로 보이는 눈발 새벽 무렵이지만 날은 채 밝지 않았다 시계는 조금씩 가고 있다 거울 앞에서 그대는 몇 마디 말을 발음해본다 나는 내가 아니다 발음해본다 꿈을 견딘다는 건 힘든 일이다 꿈,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의 전부, 쌓아도 무너지고 .. ♡♡♡/시인의 시 2009.12.20
고향에 관한 낮잠 / 한분순 생각을 누비고 기워 닳은 속내 해진 가슴 야무지게 꿰매어서 탁탁 털어 내다 넌다 그리운 곳 기웃대며 펄럭이는 마음 자락. 풀밭에 드러누워 뒹굴뒹굴 해바라기 슬그머니 치근대는 볕 간지러워 웃음 머금고 사르르 눈뜨면 다시금 서울 이런, 낮잠 끝에 달아난 빨래. - 한분순, <고향에 관한 낮잠> .. ♡♡♡/시인의 시 2009.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