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의 소 이야기 / 백석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인간보다 영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약藥이 있는 줄을 안다고 수양산首陽山의 어늬 오래된 절에서 칠십七十이 넘은 로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맛자락의 산山나물을 추었다 로장 노장老長. 나이가 많고 덕행이 높은 중 추었다 추렸다. '추다'는.. ♡♡♡/시인의 시 2009.12.20
책의 본적을 찾아서 / 정수자 책의 본적을 찾아서 -영월 책박물관 폐교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개교였네 천국으로 오르듯 가파른 계단 끝에 그윽한 책의 나라가 전설을 낳고 있네 아이들 재깔대던 꽃말 같은 낡은 분교 야생의 꽃밭이 된 운동장을 걸으면 별처럼 꽃길을 타고 풍금소리 내릴 듯 그 속에서 책들은 시간을 타고 노네 조.. ♡♡♡/시인의 시 2009.12.20
물에 베이다 / 전정희 얼마나 두드렸을까 저 돌의 여문 심장 빗물받이 돌팍 위에 움푹하게 패인 흔적 그제야 알아차렸다 내 오래된 가슴의 통증 - 전정희, <물에 베이다> 전문 ♡♡♡/시인의 시 2009.12.20
몸국 / 손세실리아 몸이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요 암록색 해조류인 몸말에요 남쪽 어느 섬 에서는 그것으로 국을 끓여내는데요 모자반이라는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왜 몸이라 하는지 사람 먹는 음식에 하필이면 몸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는 지 먹어보면 절로 알아진다는데요 단, 뒤엉켜 배지근해진 몸의 몸 설설 끓 는 몸.. ♡♡♡/시인의 시 2009.12.20
폭설 / 정용국 눈은 길을 막고 미움은 당신을 막아 끝없이 끌어내고 공들여 헐어내지만 순식간 그대를 가리는 내 가슴의 暴雪 - 정용국, <暴雪> 전문 ♡♡♡/시인의 시 2009.12.20
우포 / 이승현 시간의 기억이란 채워지는가, 지워지는가 목마른 공룡 한 마리 그 갈피 더듬고 있다 얼마나 더 짚고 짚어야 뼈의 흔적 찾을까 무심한 바람 한 줄기 행간을 훑고 간다 그럴 때마다 울컥이는 큰 몸집 저 가벼움 백짓장 하늘 한쪽은 또 다시 그걸 훔쳐내고 ... 사르르 희미해지는 점자체 가시연꽃 제 몸 벼.. ♡♡♡/시인의 시 2009.12.20
쉬 /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시인의 시 2009.12.20
오래 신은 구두 / 박옥위 길의 이력을 질펀하게 풀어내며 여린 마음 한쪽이 구두 뒤를 따라 간다 모퉁이 닳은 그 만큼 어깨 기울어진 채로 차례를 기다리는 구두의 표정들 발을 안아 모은 채 묵묵히 걸어온 구비 진 길의 지경이 넌짓넌짓 보인다 힘든 삶도 족적은 진실하게 남겨라 닳아빠진 저 밑창 상처 난 자국까지 겪어온 길.. ♡♡♡/시인의 시 2009.12.20
공사장 끝에 / 이시영 "지금 부숴버릴까" "안돼, 오늘밤은 자게 하고 내일 아침에 ..." "안돼, 오늘밤은 오늘밤은이 벌써 며칠째야? 소장이 알면..." "그래도 안돼..." 두런두런 인부들 목소리 꿈결처럼 섞이어 들려오는 루핑집 안 단칸 벽에 기대어 그 여자 작은 발이 삐져나온 어린것들을 불빛인 듯 덮어주고는 가만히 일어나 .. ♡♡♡/시인의 시 2009.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