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 정완영 초봄 정완영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 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빛을 닦아 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빛도 닦으리 - <<엄마목소리>> ♡♡♡/시인의 시 2011.09.15
우두커니 서 있었다 - 墨枾牒 / 박기섭 늙은 감나무는 어디서나 그렇습니다 그 풋감 떫은 것들 단물이 들 때꺼정 참먹을 동이째 갈아서 마시고는 합니다 먹감이 왜 먹감입니까 그래서 먹감입니다 된가을 서릿길에 만등을 내건 날은 말로는 다 못할 것들 그도 실은 먹빛입니다 이승 아니라면 저승 어느 저녁답을 늙은 감나무는 .. ♡♡♡/시인의 시 2011.09.15
덩굴장미 / 박해성 발정 난 짐승인가, 담장을 훌쩍 넘어 일방통행 레드존*에 아으~ 낭자한 절규! 차라리 꽃이라 하자, 저 환장할 암컷들 * Red Zone ; 청소년통행금지(제한)구역 - 박해성, <덩굴장미> <<시조세계>>2011, 가을호 ♡♡♡/시인의 시 2011.08.31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 유홍준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유홍준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둥글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사람이 사람을 앉히고 발톱을 깎아준다면 정이 안 들 수가 없지 옳지 옳아 어느 나라에선 발톱을 내밀면 결혼을 허락하는 거라더군 그 사람이 죽으면 주머니 속에 발톱을 넣어 간직한다더.. ♡♡♡/시인의 시 2011.08.31
솔티재를 넘으며 / 최정란 솔티재를 넘으며 최정란 출퇴근할 적마다 관문처럼 거쳐 가는 어느 땐 야트막히 어쩌면 키로 높은 재하나 굽잇길에도 두 마음이 있구나 아무리 서둘러도 출근길은 늘 바쁘고 일과를 정리하고 재촉하는 귀가 길은 전조등 어둠을 밝혀야 길을 내어 주누나 어르고 다독이며 온종일 힘겨워도 따르던 원아.. ♡♡♡/시인의 시 2011.07.05
비행운 그리기 / 장지성 비행운 그리기 장지성 한 점 티도 없는 어느 날 가을 창공 청명이 하 고요해 화폭을 펼치고서 두어 점 묵난(墨蘭)을 치며 삼매경에 젖는 거야 어디 구름 없는 하늘이 하늘이랴 그 여백 구도 잡아 곡예 펼친 편대(編隊)들이 먼 상념 밑줄을 그며 소실점을 찍는 거야 설핏 해거름이 발묵(潑墨)으로 빗금 치.. ♡♡♡/시인의 시 2011.07.05
빈집의 家系 / 박기섭 빈집의 家系 박기섭 살던 이 떠나자 집도 따라 떠났다 녹슨 문고리에 家系마저 바스러지고 마음은 저무는 참대밭 나부끼는 눈발이다 함석문 바깥쪽을 자꾸 기웃거리더니 감나무 잔가지 몇 툭, 하고 부러진다 우물은 뚜껑이 삭은 채 군기침을 해 쌓고 헛간 시래기 줄에 굴뚝새라도 날아들었나 누가 뭐.. ♡♡♡/시인의 시 2011.07.04
이승의 등불 / 정완영 이승의 등불 정완영 내가 죽어 저승에 가면 이승이 고향 아닐까 너랑 나눈 한잔 차 이야기 오소소 추운 낙엽 가을밤 잘 익은 등불이 모두 꿈길에 밟히겠네 ♡♡♡/시인의 시 2011.01.06
배접 / 임성규 배접 임성규 나, 그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비밀한 울음을 속지로 깔아놓고 얇지만 속살을 가릴 화선지를 덮었다. 울음을 참으면서 나는 풀을 발랐다 삼킨 눈물이 푸르스름 번지면서 그대의 환한 미소가 방울방울 떠올랐다. ♡♡♡/시인의 시 2010.12.31
도꾸리蘭 / 이해리 도꾸리蘭 이해리 베란다 화초들 중에 가장 볼품없는 도꾸리蘭 언제 꽃 한 번 피운 적도 없고 이파리란 것이 꼭 빗다 만 머리카락처럼 부스스한 그것에게 날마다 물뿌리개 기울여 뿌린 물은 물이 아니라 무관심이었음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마른 잎 뜯어주려 손 내밀자 순식간에 쓱싹, 손가락.. ♡♡♡/시인의 시 2010.12.30